MC소리

[OST] 남매의 여름밤 - 미련

강씨네수다 2024. 11. 17. 18:40

* 이 공간에는 영화 페이지에 쓰지 못하는 제 생각들이나 영화 OST를 짧게 담도록 하겠습니다.

 

https://youtu.be/sTbrxdS_eeo?si=B9w1kfb6y3YlkwM2

신중현 작사/작곡. '미련'

윤단비 감독이 연출한 <남매의 여름밤>(2020)은 우연한 기회로 온 식구가 할아버지 댁에 모인 여름 날의 아련한 추억을 담고 있습니다.

배우들의 매우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와 소소하지만 소중한 가족의 하루하루를 살뜰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지요.

 

이 영화에는 '미련'이란 곡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가족이 할아버지 댁으로 이사갈 때도 등장하고, 할아버지 생신날 밤에도 등장합니다.

제가 꼽는 장면은 두 번째인 할아버지 생신날 밤 에피소드입니다.

 

주인공인 손녀 옥주가 노래 소리를 들으며 2층에서 1층으로 계단을 내려가죠.

이때 옥주의 눈에 들어온 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고 노래 '미련'을 감상하고 계신 할아버지입니다.

옥주는 잠시 망설입니다. 그대로 1층으로 내려갈지 다시 돌아갈지 말이죠.

결국 옥주는 할아버지의 이 시간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아서, 다시 2층으로 올라갑니다.

그렇게 2층으로 올라가던 도중 다시 마음을 바꿔 계단의 상단에 걸터앉아 음악을 감상하게 되며, 이 시퀀스가 끝납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할아버지 생신. 춤추는 재간둥이 동주.)

저는 이 장면이 할아버지와 손녀가 말이 없어도 음악을 통해 서로 깊은 교감을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이 장면이 있었기에 결말부 옥주의 그 서럽게 오열하는 울음 장면이 관객에게 울림을 주는 것이겠죠.

 

할아버지는 오래 전 출가시켰던 자녀(주인공의 아버지, 고모)도 집에 돌아오고,

생신 선물로 멋들어진 중절모를 손녀 옥주로부터 받고, 발랄한 손자 동주의 춤을 보며

고독한 일상에 오랜만에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 여흥을 노래 '미련'을 통해 이어가고 싶던 것이겠죠.

 

손녀 옥주는 정말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가 처음엔 낯설었습니다.

영화 러닝타임이 꽤 흘렀음에도, 그 낯설음은 서프라이즈에 쓰일 생일 케이크를 들고 등장하는 것조차 망설이게 만들죠.

그러나 이 생신날 밤 시퀀스에서 옥주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렸고, 또 교감하고자 2층으로 완전히 올라가지 않고 계단에 걸터앉아 할아버지와 함께 그 음악을 듣습니다.

여기서 옥주는 혹여 할아버지의 시야에 자신이 눈에 띄어 오랜만에 감상에 잠기신 할아버지를 방해할까봐 2층 계단 상단에 앉도록 영화상 설정되기도 합니다.

 

생각이 짧은(?) 손주라면 '할아버지 뭐하세요?' 라며 할아버지의 시공간 안으로 침범했을텐데, 주인공 옥주는 그러하지 않은 것이죠ㅎ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여른밤의 추억..)

유튜브, FLO, 오디오 클립, 팟빵, 쥐약 등 어플에서 "강씨네수다" 를 검색하세요!!

 

서로를 보지 않고, 서로 말을 섞지 않고, 함께 대단한 사건을 겪지 않더라도

'음악' 만으로 세대를 뛰어넘어 교감한다는 것을 영화는 이 시퀀스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서감이 매우 뛰어난 작품입니다.

또한 상대와 교감하는 장면을 이렇듯 영화적으로 또는 시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이고요.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장면은,

주인공 옥주와 동주 남매가 할아버지 댁 현관 난간에 풀죽은 표정으로 걸터앉아 있는 시퀀스인데요.

주차를 한 뒤 뒤늦게 마당에 들어온 아버지가 '왜? 문이 잠겨서 그래?' 라며 현관문을 여는 장면입니다.

현관문은 잠겨 있지 않아 쉽게 열리고 말죠. 문이 열려 있었음에도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 남매.

어린 동주를 안으로 들여보낸 뒤 아버지는 여전히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옥주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옥주 그리고 동주가 어떠한 마음으로 그 난간에 걸터앉아 있었던 것인지 아버지는 비로소 헤아리게 된 거죠.

 

여러분에게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떠오르는 추억들이 있지 않으신가요?

이 영화를 보시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자장가처럼 다시금 그 추억에 폭 잠길 수 있을 겁니다.

 

'교감'을 소재로 쓴 작품은 꽤 있지만, 이렇게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교감 장면은 정말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기준 넷플릭스에도 있으니 찾아서 감상해 보시면 좋을 듯하네요.

(사실 며칠 전 저도 넷플릭스에서 보고 다시 감흥이 일어나 이 글을 씁니다..ㅎ)

또 제가 2020년에 방송으로 녹음한 바 있습니다. 방송도 한번 청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NG #254 - 남매의 여름밤

 

NG #254 -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작. 정서감, 연출, 연기 모두 매우 훌륭하다! 다만 심심함 주의." 올해 여름에 개봉했던 독립영화 을 녹음해 보았습니다. 옥주와 동주 남매가 여름 방학 동안 할아버지 2층 양옥집에

smellsmells.tistory.com

 

* 해당 장면과 곡이 함께 담겨 있는 유튜브 영상. (영상 스포 주의!)

https://youtu.be/yXsCvNQYBF0?si=qOaWUARZ3TfjmDoC

장현 '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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