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공간은 다양한 주제로 자신만의 영화 List를 뽑아 소개하는 곳입니다. 주관적인 선정이니 딴지 걸지 마세요~
▣ 내 유년의 영화 7 ▣ (by 지킬 님)
어디까지가 ‘유년’일까?
10살 때까지는 기억이 너무 희미할 뿐더러 극장 출입도 자유롭지 못한 때였으니 20살까지로 정하였다. 나의 유년시절 80년대와 90년대는 한국영화가 검열에 극심하게 시달리던 암흑의 끝자락이었고, 일본 영화도 금지되어 있을 때였다. 그래서 나의 유년영화는 9할이 할리우드 영화로 채워져 있다.
자매들에게 SOS를 쳤지만 결국 나와 겹치는 영화들은 결국 대개 할리우드 영화뿐이었다. 당시는 홍콩영화의 전성시대이기도 했으므로 막내는 홍콩영화들을 아주 강력히 추천했다. 할리우드 장르 시스템을 수혈 받은 <영웅본색> 같은 홍콩 느와르, 영국에 반환될 홍콩의 불안한 미래를 담은 왕가위 감독의 청춘물, 강시나 주성치를 아이콘으로 한 코믹물 등의 홍콩영화에 한국 관객들이 열광하던 때이기도 하다.
이야기가 엉뚱하게 흘러갔지만 영화 선정에 두 가지 조건이 있었음을 감안해 주시길. 첫째, 할리우드 영화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 둘째, TV에서 본 영화도 목록에 넣을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는 것.
목록의 순번은 무작위이다.
# 어셔가의 몰락 (House of Usher 1960, 로저 코먼)
이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보니 영어원제가 동일한 영화들이 몇 편 더 있어서 놀랐다.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기 때문에 영화 제목을 <어셔가>로 표기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10살 무렵 TV를 통해 온가족이 다 같이 보았다. 부모님이 먼저 잠드시고, 언니들도 각자 방으로 건너가고, 나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끝까지 보다가 온몸이 땀범벅 되었더랬다. 기괴한 그림자들과 관 속의 쌍둥이 누이를 잊을 수가 없다!
독일의 표현주의보다 먼저 접한 <어셔가의 몰락>은 내게 스크린 안과 밖의 뚜렷한 경계가 주는 안도의 공포 판타지를 남겼다. 나를 공포장르 매니아로 만든 장본인이다. 포의 원작에 이어 제인 에어의 『폭풍의 언덕』을 읽으며 영화의 이미지들을 떠올렸기 때문에 더욱 이 영화를 잊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상당히 흡사하다. 숨겨둔 여인과 가문의 몰락이라는 주된 서사. 느닷없는 제인 에어 표절제기? 느닷없는 농을 해서 미안하다;
어릴 적 우리 집엔 ‘메르헨 동화 전집, 세계 소년 소녀 동아전집, 청소년 동아전집, 현대 한국문학 전집’ 등이 있었다. 마음 약하신 아빠께서 출판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후배의 청에 못 이겨 사두신 덕이다. 초등 4학년 때까지 청소년 전집을 거의 다 읽었는데, 절반은 무슨 말인지 모르고 절반은 책 뒤의 평만 읽어서 허영심에 가득차고 시니컬한 소녀가 될 뻔했다. 다행히 지능이 범상하여 평범하게 자라났다.
<어셔가의 몰락>을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다, 온 가족과 함께.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딱 그 때 우리 부모님 나이다…….
# 구니스 (The Goonies 1985, 리처드 도너)
아주 오랜 기간 이 영화의 감독이 스티븐 스필버그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디아나 존스 1편인 <레이더스>(1981, 스티븐 스필버그)와 유사한 부분들이 많다. 리처드 도너 감독은 이 영화를 찍을 당시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감독은 이 영화를 찍은 뒤 다시는 아이들과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정말 그랬다.
이후 <리쎌 웨폰>시리즈, <슈퍼맨>시리즈 등을 연출했고, <엑스맨>과 <엑스맨의 탄생 : 울버린>,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이 감독의 연출작 중에선 <오멘>(1977)과 <컨스피러시>(1997) 등도 좋아하는 작품이다.
아이들의 모험과 성장을 다룬 21년 전 로드무비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여러 패러다임과도 맞물리는 부분들이 있다. 자본주의 경제시장의 어두운 그늘, 빈부격차, 연상녀·연하남 커플, 이민자, 장애인, 한부모가정 등등.
특히 마우스와 마이키의 대사와 행동은 자본주의 논리의 핵심키워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 마우스 신scene : 마을사람들이 소원을 담아 우물로 던진 동전들을 마우스가 쓸어 담으려 하자 스텝이 마을사람들의 소원이라며 저지한다. 그러자 마우스가 동전 하나를 집어 올리며 “이건 내가 던진 동전인데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회수하겠다. 내가 던진 나머지 동전들도 모두” 라며 다시 동전들을 줍는다.
- 마이키 신scene : 데이터가 애꾸눈 윌리 선장 앞에 있는 금들을 주워 담으려 하자 마이키가 데이터를 저지한다. “그건 윌리 몫이야.”
전자가 이윤추구를 목적에 둔 재화의 사용이라면, 후자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윤리적으로 지켜야할 마지노선에 대한 은유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숀 애스틴은 모험의 아이콘이 되어 훗날 <반지원정대>의 샘이 된다.
적어도 내게 있어 <구니스>는 어떤 장면도 버릴 부분이 없다. 20대가 끝날 무렵까지 이유 없이 가슴이 쓰라린 날이면 아이들이 모험을 떠나는 영화 초반을 몇 번이고 되감아 보았다. 왜 그랬는지 분석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는 때때로 영화가 꿈같다. 프로이트는 사람이 꿈을 꾸는 이유에 대해 이런 가설을 세웠다. 꿈은 현실의 금기된 욕망을 몇 차례 변환의 과정을 거쳐 성취하게 하는데, 윤리적이고 안전한 방법이며 설사 성취가 되지 못하더라도 꿈을 꾸는 과정 자체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가설이 맞다면 꿈이 해석되는 경우 꿈꾸는 자는 윤리적으로 안전해지기 위해 더 복잡한 꿈을 꿔야만 할 것이다. 꿈 분석하길 좋아하는 나는 그래서인지 꿈을 잘 꾸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영화의 멋진 장면이 나오면 저건 내 꿈의 일부분이 아닐까, 하면서 즐기기로 했다.
해질녘 스산한 오후, 비라도 퍼부을 것 같은 하늘. 내재음이었던 흥겨운 신디 로퍼의 팝이 그들의 험난한 모험을 예고하는 중저음의 불길한 사운드 외재음으로 바뀔 때, 나는 몇 번이고 그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 아마데우스 (1984, 밀로스 포먼)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죽음에 관련된 역사적 자료를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국내에서 1985년 겨울에 개봉했는데, 운 좋게도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그 때 난 자막을 빨리 읽을 수 없을 만큼 너무 어렸고 극장 안은 입김이 보일만큼 몹시 추웠다. 그 탓인지 모차르트의 시신이 차디찬 빗물을 맞으며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때 몸서리친 게 극장이 추웠기 때문인지 레퀴엠의 전율 때문이었는지 지나치게 공포스러운 비정한 미장센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한다.
훗날 유명한 감독들이나 영화평론공모 당선자들 인터뷰를 보니 <아마데우스>를 통해 영화를 영접하게 된 이들이 꽤 많았다. 나 역시 영화와 관련된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품었으면 좋으련만 당시 난 너무 어렸고 추워서 살리에리로부터 극장을 도망치고만 싶었다. 꿈은 어릴 때 시작되고 예술은 추운 분야다. 현실적인 문제로 살리에리가 되기로 타협해야만 했던 나의 유년을 연민하곤 했는데, 어쩌면 난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 아니라 예술이란 길에 발을 디뎌보고 질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볼라치면 떠오르는 글귀가 있다. 천리마상유 백락불상유(千里馬常有 白樂不常有). 모차르트가 백락(白樂) 같은 스승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늘 스스로를 백락을 찾아 헤매는 비운의 천리마라 생각했는데 세월이 흘러 지금은 백락을 꿈꾼다.
# 시네마 천국 (1988, 주세페 토르나토레)
어른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트려 준 첫 영화이다. 토토를 천리마로 키워주고 날개를 달아준 백락(白樂), 알프레도. 지금이야 흔한 캐릭터이지만, 선량하면서도 개구진 어른 캐릭터의 시조에 알프레도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토토와 알프레도가 협상하여 컨닝(cheating)을 하고, 필름과 영사기의 원리와 작동법을 교육하는 시퀀스는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가난하여 극장을 들어가지 못한 이들을 위해 알프레도가 극장 밖 벽에 또 하나의 영사를 떠서 쏘는 장면은 그 어떤 마술보다 신기했으며 그 어떤 자비보다 감동적이었다. 무리하게 복사된 필름은 결국 타버리게 되는데 <라라랜드>(2016)에서 필름 타들어가는 장면을 보며 <시네마 천국>의 이 장면을 떠올린 건 비단 나뿐이 아니었을 게다.
이 영화를 90년대 초 TV에서 보았고, 수시로 재방을 했기에 VTR녹화도 할 수 있었다. 15번 정도 보았을 때까지만 셈을 했고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세지 않았다. 영화를 보며 단 한 번도 울지 않은 적이 없다. 다른 영화들을 다시 볼 때는 대개 클라이맥스나 플래시백이 되는 시작점에서 울곤 하는데, 이 영화는 신부님에 의해 잘려진 숏들을 알프레도가 이어 붙여 토토만을 위한 영화로 재탄생시킨 클라이맥스 장면에 더해 매번 눈물이 터지던 장면들이 달랐다. 15번 이상을 보게 한 매력이 여기에 있다. 아마 영화의 거의 모든 시퀀스에서 한 번씩은 울었을 것이다. 학창시절, 매해 다이어리를 사서는 맨 앞장에 이 글귀를 적어놓았다.
“토토, 이제 네가 하는 다른 사람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구나. 다른 사람들이 네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싶다. 떠나라, 여길 떠나. 절대 돌아오지 마라.”
알프레도에게 영화의 정신과 기술, 모든 것을 전수 받은 토토는 이탈리아를 떠나 거장 감독이 되고, 알프레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고향으로 돌아온다. 영화의 오프닝이 바로 이 죽음을 알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생각해보니 나는 한 살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구나. 또한 앞으로도 딱히 떠날 생각이 없구나...
이 영화는 시퀀스, 신, 숏으로 쪼개어 분석하고 싶지 않다. 분석하느니 차라리 할복하는 것이 더 낫지 싶다. <시네마 천국>에 대해 나의 자매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어릴 때는 오로지 토토 시점이었데, 근데 다시 볼 때는 내 나이 캐릭터 시점이 돼.’
# 사운드 오브 뮤직 (1965, 로버트 와이즈)
뮤지컬 영화의 정점을 찍은 영화다. ‘상업영화의 정석이자 전설’이란 문장으로 정의해도 무방하다. 마리아 폰 트랩이 쓴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과 가족 이야기를 담은 『트랩가 합창단 이야기 (The Story of the Trapp Family Singers, 1949)』, 『트랩 가족과 보낸 시간 (Around the Year with the Trapp Family, 1955)』 두 권의 회고록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이다.
오프닝과 엔딩의 익스트림 롱숏(extreme long shot)과 웅장한 음악은 지금 보아도 황홀하다. 버즈 아이 뷰(Bird's eye view; 조감)의 익스트림 롱숏을 찍기 위한 헬리콥터 바람이 스크린에 그대로 노출되어 트랩 가족의 옷들과 머리, 풀과 나뭇가지들이 마구 흔들려도 영화의 핍진성이 워낙 뛰어난지라 이조차 연출로 보일 지경이다. 마치 폰 트랩가의 또 다른 험난한 삶을 예고하기 위한 서사의 미장센처럼 느껴진달까.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문법을 고르라면 마리아의 결혼식 장면이다. 변형된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도록 결혼식 축가곡을 ‘Maria(마리아)’로 한다. 이 곡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천방지축 마리아가 교회를 벗어나 뛰어다닐 때 수녀님들이 그녀를 걱정하며 부르는 노래였다. 근심과 축복이란 상반된 견해가 ‘Maria’란 곡으로 표현되는 것.
마리아가 남성(폰 트랩)에 의해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간직했기에 행복의 길을 걷는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동일한 곡의 변주를 통해 담아냈다. 다시 말해 여성이 남성과 결혼하여 신분 상승을 하고 이전의 비루한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결혼 후에도 여전히 마리아는 정체성을 지니며 결혼 전후의 삶은 서로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이 아니라고 설파하고 있다.
배경음악이 동일하게 연주되던 영화역사의 초창기에서 벗어나 이 영화는 여러 곡들이 조금씩 변주되어 반복되는 새로운 문법이 형성되던 시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법의 절정이 <라라랜드>(2016)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매년 연말이나 연초에 보게 된다. 잠들기 전 플레이 해 놓고 이불을 덮고 감상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게다가 이 영화 2017년 2월 2일 에 무려 재개봉 해주신다. 감격!
#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1989, 롭 라이너)
고등학교 때까지 내가 받은 성교육이라곤 가정 수업과 생물 수업에서 ‘아이의 생성 원리는 난자와 정자의 결합이다’란 것이 전부였다. 그에 비해 이 두 영화는 얼마나 생생하고 효과적인 성교육이던지! 대학교 교양 수업에 읽은 『이갈리아의 딸들』,『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보다도 더! 엄밀한 의미에서 ‘성 교육’이라기 보단 ‘성차에 대한 교육’이 맞겠다.
나는 네 자매들 틈바구니에서 ‘남존여비사상’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자랐다. 그래서 성차에 관계없이 남녀는 평등해야 한다는 가치가 자연스레 뿌리내려져 있었는데, 이 영화는 그러한 나의 가치관을 수정하게 만들었다. 절대평등이 아닌 성차를 존중하는 방식의 평등으로 말이다. 덕분에 남자사람친구조차 만들지 않고 건조한 대학시절을 보냈다(으응?). [믿을 수 없군요. -편집주.] 그러니 이 영화에 지나친 의미부여 하지 말고 그냥 로맨틱 코미디로 가볍게 즐기길 권한다.
이 영화는 내가 운영하는 영화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Take out.1]에서 다루었으니 많은 애청 바란다. (깨알 홍보 : http://www.podbbang.com/ch/8243?e=22108916)
# 내츄럴 (The Natural 1984, 베리 레빈슨)
베리 레빈슨 감독은 기복이 있어서 <레인 맨>(1988) 같은 명작도 있지만 <폭로>(1994) 같은 망작도 있다.
1987년 1월 1일 겨울에 개봉했다고 검색되던데, 나는 그해 봄 중간고사가 끝난 후 단체관람으로 극장에서 보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 영화 19금 영화이다. 어떻게 중학생이 단체관람으로 극장에서 볼 수 있었을까? 미스터리하지만 사실이다.
극장주와 교장 선생님 간 모종의 거래, 등등의 음모를 추론해 볼 나이는 아니었다. 단관극장에 중학교 전교생이 단체관람 할 정도였으니 수익이 상당했을 것이다. 지정좌석제도 아니어서 운 나쁘면 서서 보거나 바닥에 앉아서 보아야 했다. 대신에 하루 종일 보아도 누가 뭐라는 이가 없었다.
영화의 서사는 나에게 꽤 충격적이었다. 스포츠 승률 조작 음모로 주인공이 희생되었으나 기사회생하여 악의 손길을 뿌리치고 못 다 이룬 꿈을 실현한다. 평범한 서사 같다. 근데 이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 맞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폭력 장면보다 어린 아이들의 꿈과 희망의 싹을 잘라낼 수 있는 위험성이 서사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로 인해 모든 스포츠 게임의 승률에 회의를 갖게 되어서 그 어떤 스포츠도 흥겹게 순수몰입을 하지 못한다.
영화가 개봉한지 20년이 훨씬 지나서야 우리나라에서도 승부 조작이 드러났다. 비단 운동계만 그러하랴. 다시 말해 이 영화, 미성년자에게 세상에 대해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태도를 갖게 만들 수도 있다.
여하튼 <내츄럴>은 ‘이것은 영화구나!’ 알려준 나의 첫 영화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주인공이 9회말 2아웃에서 홈런을 치고 배트에 맞은 공이 끝없이 날아간다. 공은 마침내 야구장을 벗어나 주인공의 고향까지 날아가고, 밤을 지나 석양을 가로지른다. 이 진기함.
또 이 영화를 또렷이 기억하는 까닭은 이 장면이 나에게 준 두 가지 깨달음 때문이다. 하나는 영상이라는 것이 ‘숏(shot)의 붙임’을 통해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시간과 공간을 마음껏 축조하고 변형할 수 있는 마법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영화가 나의 시선이 아니라 철저하게 카메라, 즉 감독의 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때는 ‘숏(shot)’이란 용어를 몰랐을 때이다.
그 때 영화학과에 갈 생각을 했다면 지금 내 삶은 달라졌을까. 인생에는 숏의 편집이 없구나. 인생은 잔인한 생방송.
p.s.
원고를 쓰고 나니 언급하지 못한 영화들이 너무 많아 속이 아리다. <E.T>, <환상특급>, <스팅>, <작은 아씨들>, <백 투 더 퓨쳐>, <인디아나존스>, <그렘린>,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터미네이터>, <클리프 행어>, <인디아나 존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겨울 나그네>, <남과 여>, <닥터 지바고>, <사관과 신사>, <사랑은 비를 타고>, <엘비라 마디간>, <양철북>, <지붕위의 바이올린> …….
어째서 선택이 고통스러운가 가만 생각해보니, <시네마 천국>에서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준 필름처럼 한 숏도 버릴 수 없는 나의 유년이 나머지 영화들에 담겨있기 때문이구나.
앨범을 보듯 유년의 달콤함과 알싸함을 실로 오랜만에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준 강씨네수다님과 사적 소회를 끝까지 읽어주신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덧. 편집과 구성에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으면 부담없이 제게 알려주세요~
덧2. 바쁜 와중에도 끝끝내 원고를 써주시고, 글 게재와 임의편집을 허락해 주신 '지킬'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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