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공간은 다양한 주제로 자신만의 영화 List를 뽑아 소개하는 곳입니다. 주관적인 선정이니 딴지 걸지 마세요~
▣ 내 인생을 흔든 영화 8 ▣ (by 커틀버드 님)
아픔, 설렘, 슬픔, 고통, 경외, 동경, 아쉬움, 그리움, 연민...
수많은 감정들을 건드리며 어떤 영화들은 제 마음을 헤집고 또 한편으론 다독였지요.
이 영화들은 어느 순간 저에게 가장 의미있던 질문을 했던 영화들입니다.
저는 지금도 매우 자주 이 영화들의 포스터를 보곤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 벨벳 골드마인 (1998, 토드 헤인즈 감독)
처음 이 영화를 접한 것은 신문의 지면광고였다. 그 광고포스터에 나는 완전히 매료됐었다.
영화 속 70~80년대의 패션과 음악에 나는 완전히 마음을 뺏겼다. 당시의 뮤지션을 연기한 이완 맥그리거와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얼마나 매력적이던지.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 영화 속 대사 “Life is Image.”
나에게 저 대사는 자아와 타자의 싸움을 상기시키며 지금도 나와 함께 한다.
내 안에서 타인의 시선과 나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대립한다.
영화는 노출되는 이미지 안에 고립된 아티스트와 그들에 열광하는 대중을 통해 그 둘의 갈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타인의 시선에 따르기보다는 나만의 이미지를 찾아가는 것은 아직도 숙제이다. 아직도 유효한, 인생의 화두를 던진 영화다.
# 미치고 싶을 때 (2004, 파티 아킨 감독)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본 날짜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날 이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남은 인생 단 한 편의 영화만을 봐야 한다면 나는 아마 큰 망설임 없이 이 영화를 선택할 것이다. 영화 속 인물, 음악들, 영상... 압도당했다고 해야 할까?
언젠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왜 이 영화가 그토록 시리고 아름답게 다가왔을까.
탈출과 절망과 후회의 미묘한 교집합 안에서 간신히 버티던 그들 삶의 무게를 나는 그때도 알았을까.
삶이 변하고 어떤 찰나는 과거로만 남는다.
무상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붙잡을 수 없는 감정들은 언제나 내 마음을 크게 울렸다.
그중에서도 내내 삶에 대한 애절함을 조용히 울부짖던 이 영화 속 남녀는 단연 특별했다.
이 영화의 원제는 'Gegen Die Wand:벽을 향해서'인데 이 제목이 그들의 삶을, 그들의 사랑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거침없이 돌진하던 삶에서 한 발 늦게 확인한, 그래서 더 애틋한 사랑이다.
그리고 현실에 갇혀 과거로만 남는 한때가 되어버렸다.
강하지 못해 그리 방황했고, 강하지 못해 그리 사랑했고, 강하지 못해 끝내 손을 놓아버린 그들이 10년이 넘도록 내 마음 안에 살고 있다.
# 로렌스 애니웨이 (2013, 자비에 돌란 감독)
자비에 돌란은 내가 꽤나 아끼는 감독이다.
나는 그가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행복한 한때'가 참 좋다. 이해와 연대를 바탕으로 그들만의 세계에서 교감하는 모습을 나는 동경하고 추억한다. 자비에 돌란은 행복이 가득한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줄 수 있는 감독이다.
여자로 살고 싶은 남자와 그런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그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각자 헤어져 다른 인생을 살아가던 남녀가 해후한다. 그리고 10년이 지나서야 그 사랑의 마침표를 찍는다.
긴 그리움을 확인했음에도,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끝까지 가고 싶은, 그래서 더 확인해야 했던 쓸쓸한 마음.
온전히 품고 싶었던 한 사람의 인생인데…….
지난한 사랑의 무게를 그들이 감내하는 만큼 나도 아팠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어서 각자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그들의 사랑 이전에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려는 각자의 치열한 싸움이 있다.
스스로 지켜나가는 자신의 삶을 위한 외로움과 상처는 오로지 그들만의 몫이었다.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 그럼에도 끝까지 붙잡고 싶었던, 어쩌면 마지막까지도 놓지 못할…….
서로의 세상 안에서 적어도 자신을 속이지 않았던 그 사랑과 삶에 경의를 표한다.
#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3,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
이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간결하다.
아델이 사랑을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이야기이다.
단지 그 대상이 여자이지만 그녀의 사랑은 당혹스러울 만큼 나를 슬프게 했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내가 가장 뜨겁게 사랑했고, 내가 가장 아프게 헤어졌던 사람을 떠올렸다.
영화를 본 후 너덜너덜한 상처투성이의 뭉텅이가 목 끝까지 차오름을 느꼈다.
극장을 나선 후 골목길에 들어가 주저앉아 한참을 꺼이꺼이 울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우울증에 걸린 사람마냥 가끔씩 차오르는 눈물을 삼켰다.
잊은 줄 알았던 지난 시간을 온전히 그 자리로 되돌려 놓은 마법 같은 영화.
반짝거리던 세상과 사랑을 놓쳤던 어떤 때.
나는 따뜻한 순간을 만끽하지도 못했고, 차가운 결말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다.
몰아치는 진한 자책과 후회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가장 따뜻하고 가장 빛났던 그때.
이제는 되돌릴 수 없기에 보물처럼 묻어 둔 어느 순간순간들.
이 영화는 나의 그 순간들과 함께한다.
# 도그빌 (2003, 라스 폰 트리에 감독)
내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영화는 <어둠 속의 댄서>였고, 다음은 <도그빌>이었다.
그래서 내가 라스 폰 트리에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영화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담대하게 묻는다.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직시하게 한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이제껏 접하지 못했던 질문들 받았다.
인간군상의 본질에 대하여 "자, 너는 어떤 사람이지?"
용서와 복수와 속죄의 순간에 대하여 "너는 어떤 사람이야?"
공동체를 통해 그 잔인한 이빨을 드러내는 개개인의 폭력성.
좋은 세상을 꿈꾸는 자들에게 내재된 오만함의 실체.
단출한 무대의 메시지가 당시 나에게 끼친 영향은 대단했다.
과연 나는 권력 안에서 그들과 다를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도그빌>은 나에게 그저 충격이었다.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가 가질 수 있는 무게를 절감했던 계기가 되었다.
아마 나는 <도그빌>을 기점으로 영화의 매력에 빠졌던 것 같다.
# 안티크라이스트 (Antichrist, 2009, 라스 폰 트리에 감독)
나는 그때까지 이토록 지극히 '안티 크라이스트'적인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발칙하고 아름다웠다. 잔인하고 처절한 몸부림이다.
이토록 인간의 본성을 철저히 발가벗긴 영화는 처음이었으며 그 이후에도 없었다.
영화는 여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을 통해
통제의 수단으로 이용된 종교의 굴레와 그 안에서 죄인임을 강요당해 왔던 억압의 역사를 들춰낸다.
욕망을 죄라고 단정 짓고 행동에 대해 절대적 잣대를 갖다 대는 순간 우리는 그 감옥 안에 갇히게 된다. 이 영화는 마치 그 최면을 거세시키고자 하는 발버둥처럼 보인다.
사실 이 영화는 '안티 크라이스트'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 본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안티 크라이스트'와 '본성'의 맥락이 닿아있다는 것이 매우 교묘하지만.)
영화를 보고 한동안 인간의 욕망과 죄책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결국 이런 질문을 했다. “선악과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납득할 수 없는 욕망을 정당화하려는 면죄부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누구도 말하기를 꺼렸던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죄라 치부하며 누구도 건드리지 않고자 했던 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우리 안에 있는 당연한 욕망은 죄책감을 수반하는 죄악이어야 하는 것일까?
영화 <안티크라이스트>는 내게 새로운 관점의 세상을 열어줬다.
# 트리 오브 라이프 (2011, 테렌스 맬릭 감독)
이 영화에는 인간이, 생명이, 자연이, 지구가, 우주가 담겨있다.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지고 하나의 생명이 태어난다.
아기는 소년이 되고 소년은 어른이 된다.
삶을 살아가는 것은, 어른이 되는 것은 순수함을 잃는 과정이다.
어쩌면 하나씩 하나씩 죄를 지어가는 과정이리라.
사랑으로 가득 찬 삶과 세속적 삶의 갈래 앞에서 우리는 취약하다.
상반된 삶의 태도는 언제나 마음을 어지럽힌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죄악의 연속이라는 것을 언제 자각하게 되는가.
우리는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개개인이 평생을 가지고 살아가는 끊임없는 질문과 고민의 나열.
누구나 자신의 세계 안에서 싸우고 있다.
우리는 매번 인지할 새도 없이 과거와 대면한다.
영화는 외면해오던 내면의 깊숙한 고뇌와 상처를 까발린다.
인간의 나약함과 삶의 고통스러움을 온전히 담아내지만 그것이 결코 부정적이지는 않다.
테렌스 맬릭이 이야기하는 '인간다움'에 대한 아름다운 영상의 향연은 충분히 위대하다.
# 시 (2010, 이창동 감독)
이 영화는 혼자 손자를 키우는 할머니 양미자씨의 잠시를 다룬다.
곱디고운 그녀의 말투와 미소처럼 그저 흘러가면 좋을 삶이련만 그녀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 손자의 범죄행위, 경제적 궁핍, 고단한 삶….
이 모든 시련에 무덤덤해 보이는 그녀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예쁘게 피어난 꽃들에 눈길을 주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애써 외면한다.
그러면서도 집요하게 묻는다. “시를 어떻게 써야 하나요?”
나는 그녀의 질문이 자신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오랜 인내처럼 보였다.
영화 속에서 '시詩'는 실존적 성찰인지도 모른다.
잔인한 현실과 그 현실 속 자신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탐미적인 시각에서 시상(詩想)을 찾고자 했던 그녀는 결국 삶을 직면한다.
매 순간 외면했던 그녀의 퍽퍽한 삶은 어쩌면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는지도 모르겠다.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영화 속 선택에 그녀는 어떤 변명도, 핑계도 찾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진짜' 삶을 찾고자 했던 한 여인을 만났다.
그리고 그곳에 '진짜' 삶의 무게를 견디는 그녀가 있었다.
그녀가 처연한 미소로 바라봤을 마지막 풍경들을 결코 잊지 못하겠다.
p.s.
순서는 랭킹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어떤 흐름 안에 있다고 보는 것이 좋겠네요~
리스트를 정리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영화들을 다시 보며 묻어둔 감정들을 꺼내어 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충분히 의미 있었습니다.
이런 계기를 마련해준 강씨네수다에게 참 고마워지네요.
아마도 오랜 시간이 더 지나도록 이 영화들에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을 보면
저는 이 영화들을 정말 사랑하나 봅니다^^
덧. 편집과 구성에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으면 부담없이 제게 알려주세요~
덧2. 글 게재와 임의편집을 허락해 주신 '커틀버드'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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