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공간은 다양한 주제로 자신만의 영화 List를 뽑아 소개하는 곳입니다. 주관적인 선정이니 딴지 걸지 마세요~
* 다른 분들께 원고 청탁만 할 뿐 정작 저는 쓴 글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허세스럽게 한 번 남겨 보았습니다 ^^
▣ 내 영혼에 각인된 영화 7 ▣ (by 강씨네수다)
7.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13)
가끔 이 영화가 그립다. 억지교훈과 억지웃음이 없고, 아날로그적인 사람 사이의 정을 그리워하는 느낌의 영화. 직장이 디지털 잡지회사로 변모하면서 주인공은 쫓겨나지만 오히려 살가운 ‘사람’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공상이 위로가 되었던 때를 지나 사람의 살결이 현실의 위로가 되어버린다.
마지막 씬에서 오랜 친우가 찍어준 자신의 사진이 잡지 폐간호 표지로 쓰이고, 그것을 확인한 주인공은 바로 곁에 있는 ‘사람’에게 다시 살가움을 전한다. 애초에 연락두절된 사람을 찾기 위한 여행처럼 영화가 전개되고, 묘한 불안과 쓸쓸함이 종국에 ‘정’으로 귀결될 때 은근한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서구에서 최선으로 묘사할 수 있는 세련된 ‘정(情)’의 모습이랄까..
6.
<베어> (The Bear, 1988)
내 인생/기억 속 극장에서 본 첫 영화. 나의 첫사랑. 내 모든 영화의 원형(元型). 어릴 적 동네극장의 낡고 생경한 그 어두컴컴함과 나를 극장에 데리고 간 부모님의 포근한 사랑이 내게 깊숙이 박혀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영화 그 자체보다 영화를 함께 본 동행들과 만드는 추억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어미를 잃고 고아가 된 새끼 곰이 우여곡절을 겪는 내용인데, 계곡 씬에서 포식자를 향해 새끼 곰이 포효하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혼자라고 생각한 때에도 반드시 누군가 내 뒤에서 나를 지켜준다.
5.
<캐리비안의 해적 1,2,3> (고어 버빈스키 감독)
자유분방한 그 경쾌함이 좋았던 것 같다. 영화 속 거의 모든 인물들은 현실의 안락함보다 위태로운 모험 끝에 있는 보물과 돈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해적이니까! 하하.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과 멜로를 읊지도 않고, 자신을 배신한 적 있더라도 동료 해적과 다시 바다로 나선다. 의리가 아니라 그냥 모험이 좋으니까. 이 경박한 경쾌함..!
그러나 주인공이 칼을 빼어 들고 크라켄의 입 속으로 자진하여 뛰쳐 들어갈 때에는 스스로 선택한 운명을 감내하는 용기도 느껴졌다. 물론 도망칠 수 있다면 죽어라 도망쳐야지, 해적이니깐! 모험과 동화,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주인공의 연기 모두 잘 어우러진 판타지 시리즈물. (딱 3편,까지가 좋았다.)
4.
<미션> (The Mission, 1986>
이 영화는 음악으로 먼저 만났다. 어린 나이에도 OST LP를 주구장창 들었던 것 같다. 어느 여행길 차를 타고 굽이굽이 고갯길을 가다 잠시 쉬던 때 차 안 라디오에서 전곡이 흘렀다. 하늘과 가까운 산길에는 우리 가족 뿐, 잠에서 깬 어린아이는 놀라지도 않고 선율에 귀 기울이고, 차창 밖은 푸르스름한 노을과 선명한 별이 만나고.
나이를 좀 더 먹고 영화를 봤을 때엔 깊은 신앙적 고민을 안게 되었다.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두 신부 모두 내 안에서 박동하고 있다. 신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곧 우리는 선택해야 할 때를 맞을 것이다.
3.
<주먹이 운다> (2005, 류승완 감독)
스스로도 참 의외였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질질 흘렸다. 화끈한 액션을 기대했는데, 꽤 건조한 삶의 부대낌을 담고 있다. 짙은 연민이 가는 두 인물의 권투 경기 끝에는 분명한 결과가 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지독한 바닥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의지를 불태웠다는 것만으로 단순히 위로를 삼을 수 없는 이 현실. 선명한 희망을 그리지 않지만 꽤 공명할 수 있었던 영화이다.
나는 최민식이 아들에게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에 모두 공감한다.
2.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9, 이명세 감독)
나는 아직도 이 정도 수준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이 영화를 보고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서사를 영상과 음악의 다양한 변주로 대체시켜버리는 연출. 한 편의 문학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저 배경/소품이나 감정 전달의 수단에 그치지 않고, 영화의 모든 기술적 요소들이 주인공처럼 행세한다.
“화면으로 정서 전달뿐 아니라 이야기를 전개시킨다”고 나는 종종 이명세 감독을 평가하는데, 더 좋은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내 얕음이 참 아쉽다.
현실적인 애환과 독특한 환타지 공간이 위화감 없이 잘 융화된, 그 무대 위에서 배우 박중훈은 희대의 광대 연기를 펼친다. 그의 작위적인 표정, 과장된 몸짓, 위악적인 말투... 역으로 최대의 절제와 정교한 계산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연기였다.
결말 처리가 살짝 아쉽지만, 무엇 하나 명장면이 아니지 않을 정도로 모두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그 쓸쓸한 정서도 마찬가지.
1.
<박하사탕> (1999, 이창동 감독)
이건 문학이다. 영화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의 문학예술이 아닐까. 내가 아직도 탄복하는 건 세밀한 감정의 조율과 문학적 장치, 그리고 관객에게 모든 것을 수용하게끔 만드는 공간의 환타지 연출이다. 무엇보다 역사성이 두드러지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참 좋다.
설경구가 다리를 절듯 우리는 가끔 순수함을 끄집어낸다. 사라졌기 때문에 더 기억할 가치가 생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위악을 뽐내지만, 서서히 내 주변과 나를 결국 망가트리고 만다. 어디서부터 잘못이었던 건가. 그러나 그 이유를 안다고, 되돌아간다고 잘못을 고칠 수 있을까. 영화는 그 갱생을 생각할 여유 없이 그저 눈물만 흘릴 것이라 말한다.
나는 영화 속에서 설경구가 다리를 저는 모든 장면을 사랑하지만, 동네 공터를 자전거로 빙빙 돌며 위악을 장전하는 씬을 참 좋아한다. 아, 술집 아가씨 옆에 누워 “순임씨”를 나지막이 부르며 벅찬 눈물로 흐느끼던 씬도 매우 좋아한다.
비극보다 더 강렬한 각인이 또 있을까.
덧. 이 작품은 방송에서 다룬 적도 있다. NG#107 : http://blog.daum.net/smellsmells/402
덧. 편집과 구성에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으면 부담없이 제게 알려주세요~
덧2. 청취자분들의 원고 기다립니다~ 자신만의 주제로 자유롭게 써주시면 되어요!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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