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공간에는 간단한 리뷰를 담습니다. 스포가 있습니다.
2024 강씨네 영화제를 위해 올해 개봉한 지난 영화들을 보고 있습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 정말 재미나게 보았습니다.
정말 모처럼 영화다운 영화를 본 느낌이었습니다.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오락성을 선사하고, 장르적 재미가 충만하며, 예술 작품으로서 사유를 던져주는 작품이었지요.
개인적으로 <빽 투 더 퓨처>(1985) 재감상 이후 오랜만에 받은 느낌입니다.
이 작품은 '에이리언' 시리즈 중 가장 최신편이지만, 시간상으로는 1편(2122년)과 2편(2179년) 사이의 시간대인 2142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네요.
그 이전 시리즈 물이었던 <에이리언: 커버너트>를 콧방귀를 뀌며 보았고,
딱히 이전 작품들을 재미나게 보거나 열광하며 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개봉 당시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보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의무감으로 영화를 골라서 시큰둥하게 재생했는데,
주인공이 있는 식민지 행성의 풍광이 담긴 화면을 보자마자 탄성을 지르며 몰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디스토피아 특유의 노곤하고 비릿한 느낌이 물씬 담겨 있는 장면이었거든요.
와, 이게 헐리웃 자본의 힘인가.. 싶었습니다. 이런 디자인과 느낌이 없어 아직 우리나라 SF는 약한 건가.. 싶기도 했고요.
(관련한 스틸컷이 없어 이곳에 퍼오지 못해 아쉽네요.)
'에이리언' 시리즈를 잘 모르는 제가 봐도 그 이전 작품들에서 설정을 빌려온 것 같은 장면들이 많았는데요.
아마도 감독인 페드 알바레즈가 시리즈의 광팬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빌려온 설정 장면들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평가를 받기도 하더군요.
그 설정들을 짜임새 있게 재구성하여, 몰락하던 시리즈를 살려 놓았으나
역으로 감독만의 독창성은 눈꼽만큼도 없는 것 아니냐는 엇갈린 평가들이 바로 그것이죠.
뭐,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좋아 뵈는 건 그냥 좋게 느껴졌고, 고평가를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업의 횡포,,가 그 중 하나였습니다.
국가의 통제가 옅어진 대신 사기업들이 자본의 힘으로 자신만의 권력을 구축하게 되는 미래를 그리고 있는데,
주인공의 노동 계약 기간이 강제로 갱신/연장되는 장면이 영화 초반에 바로 나오죠.
우리가 사는 현 시점에서도 언뜻 엿보이는 장면들이라 바로 납득되어버렸습니다;;
애초에 식민지 행성의 치안도 민주주의 정부가 아니라 사기업이 맡고 있잖아요. 그런 기업에 거스르기가 쉽지 않겠죠.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AI(합성인간)뿐만 아닌 생명 가치의 프로토콜까지 접수해버리는 그 장악력. 돈에 환장한 사기업의 전형적인 단면이죠.
국가의 전유물이었던 부문들-교통 인프라, 보건 인프라, 전력 인프라, 우주 사업 인프라 등-이 세계적으로 서서히 사기업에 종속되고 있으니, 영화 속 미래가 머지않은 것 같기도 하네요.
이런 기업의 감시를 뚫고 주인공 일행이 무슨 조난 함정에 가자고 논의하는 장면이 좀 이상하기도 했는데,
그냥 로봇 청소기처럼 일정 영역 안에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하여 효율성을 높이려는 기업의 책략을 역이용하는 것이겠거니 하며 그냥 넘어갔습니다;
(피부가 맑은) 주인공과 그의 AI로봇 '앤디'를 보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그리고 또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생각할 수 있었는데요.
형제처럼 대하던 '앤디'를 버리고 홀로 신세계로 가려는 주인공의 이중적인 작태도 나오지만,
그냥 도망쳐도 되는 장면에서 주인공은 '앤디'를 위해 그 에이리언 소굴로 되돌아가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야, 그래, 이거지!' 라고 말해 버렸습니다 ㅎ
인간이 인간다움을 가장 잘 드러내는 건 바로 이런 '비합리적 선택'이거든요.
우리 세상의 인간성이 점점 메말라는 이유는 바로 이 망할 합리적인 현대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망가진 로봇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주인공의 모습은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물론 AI시대 초입에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 좀 섬뜩한 장면들도 나오죠. (망할 AI 놈들...)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하라는 새로운 모듈의 기준에 따라 사람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장면들이 몇 나옵니다.
사실 제가 더 섬뜩했던 장면은, '앤디'가 주인공에게 '돕겠다'는 말을 한 장면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당신에게 짐 덩어리였지만, 드디어 이제 당신을 도울 수 있어요."
..라고 비슷하게 주인공에게 말한 '앤디'가 다른 일행을 뒤쫓아 무섭게 뛰어가는 장면은 AI가 스스로 무언가를 각성해 버린 느낌이 들었어요.
마치 <터미네이터>의 '스타이넷'이 인간에게 중요한 이 자연을 지키기 위해선 인간 박멸이 우선이겠구나!' 라고 깨닫는 것처럼요.
어떠한 기준을 받아들이면 다른 가치 체계를 무시하고 스스로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기준을 준수하려는 모습.
운전석의 한 명을 지키기 위해 보행자 세 명에게 위험을 끼치는, 오류 난 자율주행차의 모습이릴까요..;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영화는 장르적으로도 매우 쫄깃합니다. 무턱대고 공포나 충격을 선사하지 않고 서서히 목을 죄어 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탁월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제가 이미 '에이리언'이란 존재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걸지도 모르죠ㅎ
선악이 대결하는 구도에서는 악당이 강하고 무자비해야 합니다.
이 작품의 에이리언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살육과 번식의 본능 밖에는 남아 있지 않는 모습. 최고더군요..으흣
런닝타임 끝의 끝에 가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연출과 숏폼 시대에 걸맞는 편집 리듬감이 정말 좋았습니다.
영화에서 여성 주인공에게 살상 능력을 부여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극 중 주인공은 총으로 사격을 해본 적이 없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총에 달린 AI(...)로 자동 조준 및 반동 자동 감쇄가 되어 에이리언 수십 마리를 격퇴합니다.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체구도 작고, (피부도 맑고) 인상도 여리여리해서 시고니 위버와 달리 '전사'의 느낌은 나지 않았거든요.
근데 뭐, 싸움을 인상으로 하나요ㅎ 여지없이 에이리언들을 총으로 쏴죽이는데,
그때 액션 쾌감이 엄청났습니다..! 정말 연출이 상당히 좋은 것 같아요.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여느 영화들에서는 무작정 여성이 각성하여 전투력을 보여주는 식으로 흘러가는데,
이 영화는 나름 과학적인 개연성을 부여하여 이 점을 극복한 게 좋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비판의 다른 축은 1편과 2편이 내포하고 있던 페미니즘적 요소가 많이 희석되었음을 지적하더군요.
본래 이 시리즈는 '강간과 임신의 공포'를 괴물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여 남성 캐릭터들에게 역으로 선사하고 있고,
그 공포에 맞서 여성 주인공이 결국에는 승리하여 생존하는 구조가 특징이라 말하더군요.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는 오히려 여성 캐릭터가 괴물의 DNA(? RNA?)가 담긴 주사기를 '살기 위해' 자신의 몸에 투약하고,
심지어 괴물의 알을 (흉부나 복부가 아니라) 여성 생식기를 통해 '출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명백히 1편과 2편이 훌륭하게 암시하던 요소를 거스르는 것이고,
감독의 전작인 <맨 인 더 다크>의 남성 생식 본능의 도구로만 존재하던 여성의 모습을 재탕한 것이 아니냐는 논리였죠.
뭐, 일리는 있다고 봅니다. 일단 1편과 2편의 감독이 그런 의도로 연출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좀 이해가 되지 않은 장면도 있긴 했습니다.
여성 캐릭터가 자신의 가슴에서 검은 모유가 나오는 걸 보는 장면인데, 처음에는 저게 뭔가 싶었거든요.
어떤 분은 극 중에 태아에서 변형된 괴물이 그 여성 캐릭터를 어머니로 인식하고(시리즈 4편처럼?)
그 여성 캐릭터에게 접근하여 그 모유를 먹으려던 것이라 말씀하시던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서로 초면이라 데면데면했고,
그 여성 캐릭터는 자신의 가슴에서 검은 물체가 나와 놀란 것일 뿐 아닌가 싶습니다.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앤디'의 모듈을 꺼내 보는 장면을 카메라가 몇 초간 비추는데,
모듈이 다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건가? 그렇다면 '앤디'가 회복되었을 때에는 주인공에게 해를 끼치게 되려나?..하는 의문이 들었는데요.
카메라는 모듈에 있는 회사(웨이랜드 유타니)의 로고를 비추는 것이더군요.
회사로부터 도주하는 주인공이 회사의 소유물인 '앤디'를 고치기 위해서 회사와 또 어떤 접점을 만들지 기대를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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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나레이션도 1편의 시고니 위버 나레이션 장면이 떠오른다고 시리즈 팬들이 평하더군요.
어쩌면 감독은 성덕일지도 모르겠네요. 자신이 애정하는 시리즈를 연출도 하고, 심지어 훌륭하게 부활시켰으니까요.
우리나라의 시리즈 영화인 <범죄도시>가 날이 갈수록 쇠락하는 것을 보니,
한 20년 쯤 지나면 <범죄도시> 광팬인 감독이 나타나 늙은 마동석으로 다시 <범죄도시>를 살려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마동석이라면 20년이 지나도 벽 부수고 다닐 수 있겠죠? ㅎ
덧.
참고 기사 : https://omn.kr/29t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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